글의 향기

가을편지

슬로우 슬로우 2006. 11. 8. 10:03


 
        잎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원고지처럼 하늘이 한 칸씩 비어 가고 있습니다 그 빈 곳에 맑은 영혼의 잉크물로 편지를 써서 당신에게 보냅니다 사랑함으로 오히려 아무런 말 못하고 돌려보낸 어제 다시 이르려 해도 그르칠까 차마 또 말 못한 오늘 가슴에 고인 말을 이 깊은 시간 한 칸씩 비어 가는 하늘 백지에 적어 당신에게 전해 달라 나무에게 줍니다 -이성선 시인의<가을편지> 우수수... 건드리지 않아도, 가을이 떨어집니다. 노랗게 물든 사연을 가슴에 꼬옥 품고서... 사랑한다는 것은 조용히 물이 드는 것이라고, 홀로 찬바람에 흔들리는 것이라고, 빈 원고지 같은 쓸쓸함이 나부끼는 가을 편지... 사랑함으로 오히려 아무런 말 못하고 돌려보낸 어제, 다시 이르려 해도 그르칠까 차마 또 말 못한 오늘, 가슴에 고인 말을 씁니다. 못다한 말, 못다한 사연, 가을의 흰 뼈, 그리움으로 녹슨 햇빛 아래 바래져가는 편지를 씁니다. 나는, 그대는, 어디서 떨어져나온 누른 잎사귀 같은 사연인지요. 끝내 빈 칸으로 남은 사랑이여, 이별하기 위해 찾아왔던 가을이여, 서걱이는 갈대밭 갈피마다 꽂힌 마음이여, 오래오래, 그리움을 씁니다. 오래오래, 사랑을 씁니다. -박선희 시인의 <아름다운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