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친다는 것
새로 사 온 시집을 넘기다가
종잇날에 손가락을 베었다
살짝 스친 것도 상처가 되어
물기가 스밀 때마다 쓰리고 아프다
가끔은
저 종잇날 같이 얇은 生에도
마음 베이는 날
그 하루, 온통 붉은 빗물이 흐른다
종잇날이 스치고 지나간 흔적처럼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은
모두 상처다
나와의 만남도 상처며
나와의 헤어짐도 상처다
무딘 날에 손 베인 적 있던가
무덤덤함에 마음 다친 적 있던가
얇은 것은 상처를 품는다
스친다는 것은 상처를 심는 거다
-박선희의 詩<스친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은 스친다는 것!
종잇날이 손가락을 스치듯,
사람이 사람을 스치고,
남자가 여자를 스치고,
감정이 마음을 스치고,
공간이 시간을 스치고,
풍경이 거리를 스치는...
종잇날이 손가락을 베고 지나간 흔적처럼,
우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모든 것은 곧잘
마음에 상채기를 남기곤 합니다.
나와의 스침처럼...
당신과의 스침인, 만남과 헤어짐또한
상처일 때가 많습니다.
무딘 날에 손 베이지 않는 것처럼,
무덤덤함에 마음 다치지 않는 것처럼,
더러는 무뎌지고,
더러는 무덤덤한 삶이이야 합니다.
어차피 스친다는 것은
쓰리도록 아픔이니까요.
얇은 것은 언제나 상처를 품고 있습니다.
상처를 품은 얇은 생에
당신의 마음 다치지 않도록
조금은 무덤덤해질 수 있기를...
-박선희 시인의 <아름다운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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